태국의 롬프란펀 교회의 박선교사님은
20개의 교회를 개척하셨다.
그를 통해 자란 태국 산족마을의 아이들은
산에서 내려와 공부를 하고, 대학을 진학하며,
마을을 이끄는 리더들이 된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 중 한명은 지금 우리 NGO의
지부장 파송을 준비중이다.
그는 뇌경색을 앓고있다.
사모님이신 정선교사님은 골다공증으로 인해
스테로이드제로 투병하셨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쑤시는 뼈마디를 부여잡은
그들은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그들의 삶은 나를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고개를 숙여보니 하늘이 보인다.
내가 파송한 지부장중 가장 어린 화평이는
아버지의 선교를 돕기 위해 떠났다.
나는 화평이가 외롭기를 바랬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외로움 가운데 임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결국 외로움이 선교사의 삶을 사는 이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터이니
그 시간이 조금 빨리왔으면 했다.
힘들어하고 있을 화평이에게 또 전한다.
너는 버려진것이 아니라
뿌려진것이다.
캄보디아 껀달주 쏙싼의 류선교사님은
남들이 가지 않고, 힘들다는 사역지만
골라 다니셨다. 타협없는 그의 성격은
선교지에서 빛을 발한다.
그 이제 빛은 이정표가 되었다.
또 캄보디아의 추선교사님은
위험하다는 쓰레기마을, 철거민촌에
혼자 들어가 마을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사신다.
한국에서는 은퇴를 하시고
쉴 나이지만 그가 한 결정이다.
몸도 안좋으신데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을 그는 웃으며
기도한다.
그의 결정이었을까.
그분의 결정이었을까.
몸이 아팠다.
그 이후로 나는 죽음에 관하여
종종 묵상하고는 한다.
묵상할수록
생각지도 못한 먼 미래의
나의 뒤에 있어야만 했었던 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종종경험한다.
그리고 그 묵상의 끝은
항상 선교사님들의 얼굴로 끝이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
외로움과 친구처럼 지내는 이들.
난 그들을 통해 또 기독인의 삶을
배운다.
한국에서 팀을 만들어
그들에게 향했다.
팀 이래봤자.
미혼모들 몇명. 개척교회 청년들 몇명.
시골교회 목회자 자녀가 몇명.
시간이 좀 흐르니 한국교회와 기업에서
청년들을 보내주었다.
또 미혼모들 몇명, 교회청년부 몇명.
음악하는 친구들 몇명. 문화사역팀 몇명
그렇게 7기까지 봉사단(선교팀)이
파견되었다.
영상으로 기록되었던
우리의 시간들을 다시 본다.
뒤돌아 보니.
우리의 시간과 삶은
버려진것이 아니라
뿌려졌다.
나는 위로받고 싶다 기도했으나
이제 위로이고 싶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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