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에서 죄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보다 더 큰 기쁨의 능력으로 죄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화에 대한 저의 이해입니다. 사람들에게 단지 죄 짓는 것을 멈추라고 한다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이유는 죄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 때문입니다. 의무로 죄를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 오늘도 죄를 짓는 의무를 다해야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그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기분좋게 합니다. 죄를 지을 때 더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죄를 정복했습니까? 행복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요? 물어보기도 하는데. 행복은 물론 중요합니다. 행복은 성경 전체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삶에서 죄를 이기는 중요한 열쇠는 하나님에 의해 기적적으로 변화되어서 죄를 짓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신학대학원, 독일에 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에게 편지를 쓰셨고, 편지의 마지막에 종종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존 네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거라 (고린도전서 10:31) 18살에 대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서 문학을 공부하면서 두가지 생각이 항상 부딪혔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부모님이 행복하셨기 때문에 나도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과 성경에 쓰여있는 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했습니다. 그 때는 이 두가지를 같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올바른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행복이 그냥 몰래 다가오는 거라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쫓아가도 될까요? 행복을 원해도 될까요? 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해지길 원하는 것을 결코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길 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22~25살에 저의 모든 세계가 변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비젼이, 그분의 통치하심에 대한 이해가, 기쁨에 대한 이해가, 그분의 영광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많은 현대적 관념에서 우리 자신의 이익을 바라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나의 이익, 나의 행복, 나의 기쁨을 원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C.S.루이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잠재되어 있다면, 이것은 성경이 아니라 임마누엘 칸트와 스토익 한테서 들어온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C.S.루이스는 제 주의를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추구가 나쁘다는 생각은 성경이 아니라 스토익에게서 영향받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C.S.루이스는 계속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약속하고 있는 보상에 대한 뻔뻔한 약속과 놀라운 성질을 고려한다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바램이 너무 강한게 아니라 너무 약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었습니다. 존 파이퍼 너의 문제는 너의 바램이 너무 강한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약한게 문제야.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몇 년동안 저는 제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바램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 길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고, C.S.루이스는 이렇게 끝마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한한 기쁨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데도 이것을 무시하고 술과 쾌락과 야망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반쪽자리 생물과 같다. 이것은 휴일에 바다로 놀러갈 수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빈민가에서 진흙을 가지고 노는 어리석은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즐거워합니다.
빈민가에서 진흙파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같습니다. 더러운 물에서 지저분하게 놀고 있는데 한 남자가 와서 말합니다. 너희들에게 2주동안 바다에서 멋진 휴가를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합니다. 괜찮아요 저희는 여기서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아이들은 그 남자가 말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을 찬양하라고 했을 때, C.S.루이스는 저에게 이것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탁월함을, 그분의 행하신 일을, 그분의 능력을, 그분의 지혜를, 그분의 은혜를 즐거워한다면, 우리가 그분을 즐거워한다면 우리에게 그 기쁨을 표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찬양이 우리의 기쁨을 완전케하고 완성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 완성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을 완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이 하나님 안에서 제 기쁨을 완성시켜준다는 것은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받으시고 가장 찬양받으십니다.
제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마치 제가 아내에게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그녀를 존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를 그 어떤것보다 기쁘게 합니다 라고 말할 때, 느낄 때 하나님이 존중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나를 위해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만족이 나를 수평적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도행전 20:35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어떤 사람들은 복 받는 것을 동기로 삼지 말아야 하지만,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복 받는 것을 잊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더 많은 축복,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만족, 더 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내 삶을 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받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맞습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일하는 방법은 제가 당신을 포함할 때 기쁨이 커집니다. 하나님 안에서 당신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피커 : 존 파이퍼 목사
배경음악 : 크리스챤B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