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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씻을 수 없는 죄(마27:1~10)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유다가 어떤 계기로 뉘우치게 됐는지, 어떤 심리적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유다는 자신의 큰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합니다. 그 후 유다가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자신과 범죄를 공모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3~4a절). 그러나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고, 유다의 고뇌에 관심도 없었습니다(4b절). 결국 유다는 예수님을 판 대가로 받은 은을 성소에 던진 후 목을 매고 죽습니다(5절).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이 은을 핏값이라 부르며 성전고에 넣지 않는데(6절), 이는 그들 역시 그 돈이 악행에 사용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죄를 씻으려 했던 유다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그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그분께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스스로의 죄를 씻으려고 아무리 자신을 채찍질해도 그것이 마음에 평안을 주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죄에 어떤 자세로 다가가고 있습니까?


묵묵히 십자가의 길로(마27:11~19)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죽이면 부정해져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고, 그렇다고 유월절 이후로 사형을 미루면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수님께서 왕을 사칭해 반란을 조장한다는 죄목으로 고발합니다(11절, 참조 눅 23:2). 그러나 빌라도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고발이 허황됨을 알고 있었습니다(18절). 또한 당연히 열심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할 예수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습니다(14절). 그리고 빌라도의 아내가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라고 한 말은 이미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19절). 예수님의 정당함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이 정당한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기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데 집중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옳은 길만 바라보고 걷기 위해 내가 이겨 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나(마27:20~31)

예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갔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무리를 선동했고, 무리는 자신들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요구합니다(22절). 빌라도는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지만(24절), 이는 재판장이 취해서는 안되는 태도입니다. 그는 민란이 날까 두려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다수가 원하고, 그로 인해 내 안위가 유지된다면 한 사람쯤은 억울하게 죽어도 된다’라는 생각은 재판관이 결코 가져서는 안되는 비겁한 태도입니다(26절, 참조 출 23:2). 결국 종교지도자들의 탐욕과 백성의 무지, 빌라도의 비겁함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큰 죄의 원인이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인간의 악한 동기도 선하게 사용하시지만 그 악한 동기를 품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릅니다. 나는 혹시 악한 동기에 의해 죄를 범하는 경우가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삽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마27:32 ~ 44)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비참했지만,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대관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관식에는 열두 제자 가운데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제자들 대신 예수님과 함께 행진했고(32절), 예수님의 좌우에는 두 강도가 자리해 욕설로 왕을 맞이했습니다(38, 44절). 군중들은 조롱과 욕설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 외칩니다(42절).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도 주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시몬입니다. 그는 교회 역사상 가장 큰 부러움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아무런 공로가 없었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영광을 얻었고, 그로 인해 그와 그 가족이 구원을 얻고 초대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 됐습니다(참조 막 15:21; 롬 16:13). 이 사건은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 줍니다. 나는 예수님의 대관식에서 어느 자리에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다(마27:45~56)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인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합니다. 이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주의 날’이 임했음을 드러냅니다(참조 암 8:9). 이때 예수님께서는 시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버리시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드러내십니다(참조 시 22:1). 또한 주님께서 운명하실 때 여러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51~53절), 그중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은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그 벽이 사라진 것입니다. 더 이상 속죄의 제사나 대제사장과 같은 인간 중재자가 필요 없고,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시고 또한 그분의 영을 받은 자들이 성전이 돼 하나님을 직접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이 놀라운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나는 얼마나 이 사실에 감사하며 또한 이 권세를 선용하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지켜야 할 일(마27:57~66)

마태복음 시작과 끝에는 율법을 어기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참 의인인 두 명의 ‘요셉’ 이야기가 위치합니다. 율법대로 하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마리아를 간음죄로 고발해야 했지만 오히려 보호했으며(1:19~25), 아리마대 요셉은 유월절에 시체를 수습하는 부정한 일을 해서는 안되지만 이를 감수합니다(59~60절). 진정한 의인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평소 사람이 부활한다고 가르쳤으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 대제사장들과 야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빼돌려 부활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그들이 실제로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64절).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늘 가르치던 내용이 실제로 이뤄진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경비병을 세워 죽은 자를 지키는 희극을 연출합니다(66절). 내게는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모습이 없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출처 : 날마다 솟는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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