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위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들을 통하여 위기에 있는 백성들을 어떻게 위로하시고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지 보여주는 일에 쓰임 받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누가 이 하나님의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를 보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고통과 재난과 위기 속에 절망 속에 있는 이 세상 속에 교회가 하나님의 위로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당시 페르시아 시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왕에게 술을 따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책처럼 여길 수 있지만, 역사가들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 왕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 사람은 왕의 부인이요 또 한 사람은 술 관원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또 세상적으로 보면 느헤미야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의 최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 왕의 가장 신임받는 관료라고 한다면 그저 자기자신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면 그는 기도할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동족이라 할지라도 예루살렘에 있는 그 동족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기적인 삶 자기만 아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동족 예루살렘에 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한 이 형편에 대하여 그는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예루살렘의 형편과 같은 한국교회의 모습 또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느헤미야와 같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고 문제로 일으키지 않아서 나는 괜찮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신앙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마땅히 가져야 할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느헤미야의 영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위로하시고 그 백성들을 어떻게 위로하시겠습니까? 바로 느헤미야와 같이 주님의 종 된 마음을 품고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로를 이 땅의 보여 주실 겁니다
오늘 이 시대에 역사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각자 자신의 삶에만 바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종들이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형편을 살피고 기도로 참여하는 모습이 부족할 때 이스라엘 백성처럼 성벽이 재건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악은 무관심 일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단지 동족이기 때문에, 나와 혈육을 나눈 동족이기 때문 만이 아닙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의 수치는 곧 하나님의 수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헌신과 열심 때문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수치와 수모 가운데 있고 성벽은 방치돼 있고 성문은 불에 타 있고 각자 자신의 삶에만 바쁜 예루살렘의 형편을 보면서 느헤미야 가졌던 첫 번째 반응은 기도였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것은 올바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좋은 생각을 품는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첫째로 그는 마음을 찢는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헤미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 깊은 슬픔의 기도, 오랫동안 흘러나오는 눈물의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은 말씀을 잘 전하는 목회자들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사람들만 있어서가 아닙니다. 곳곳에서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있는 길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 올바른 게 무엇인지를 비평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느헤미야같이 눈물로 기도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눈물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한다
오늘 점점 풍요로와지는 이 시대 속에 이러한 위기가 찾아온 것, 한국교회가 수치 가운데 빠진 것 바로 이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또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조상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동일시하고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족속이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가 주께 약했습니다. 우리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조상들과 느헤미야가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통해서 조상들이 범한 죄가 곧 나의 죄라는 동일시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이 저들이 조상들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느헤미야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우리의 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죄라고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회는 누군가 한 사람 때문에 이 사회가 어지럽게 된 것이라고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과 같지 않다 그들과 같지 않다 저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고 누구 탓을 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한국교회가 수치 당하는 모습 앞에 누군가 때문에 저들 때문에 그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그들 탓을 하며 우리는 아니다라는 생각은 헛된 교만입니다. 느헤미야는 우리의 죄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수치와 수모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나의 죄 때문입니다. 그것이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였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소망의 회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백성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흩으실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회개하면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그 말씀 그 회복의 말씀을 붙잡고 느헤미야는 기도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 속에 나타난 이 회복의 약속을 붙잡는 자들은 반드시 돌이키시고 회복시키는 사랑의,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하나님께는 언제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 아래로 피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그늘 아래 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 자신을 감추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참담한 형편을 듣고 슬피 우는 기도의 사람 또한 누군가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고 동일시하며 회개하는 사람 또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소망을 찾고 그리스도의 새 언약 가운데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을 기꺼이 주께 드리는 주의 종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런 주의 종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 주의 종의 기도를 귀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스피커 : 이재훈 목사
배경음악 : 크리스챤 BGM